20030701105853-NOBRAIN노브레인 – 안녕 메리 포핀스 – CUJO Entertainment/Oi Music, 2003

 

 

조선 펑크, 맹진한 뒤 회고하다

2001년 여름 일본에서 열린 후지록 페스티벌에 참여한 ‘조선 펑크’ 밴드 노 브레인이 ‘한 건’ 올린다. 다름 아니라 공연 중에 일본의 국기(‘일장기’ 혹은 ‘욱일승천기’)를 찢어 버리는 ‘퍼포먼스’를 감행한 것. 아이러닉하게도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이들은 국내에서의 지명도도 상승하고, ‘일본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이듬해인 2002년 일본에서 [Burning Youth]라는 싱글 음반을 발표한 것. ‘보아 수준의 대박, 적어도 자우림 정도의 성과도 아닌데 무슨 호들갑을 떠느냐’고 반문한다면, 국제적 진출을 할 때도 ‘초심’대로 일본의 인디 레이블과 계약해서 발표한 음반이라고 답변을 드린다. 그동안 일본에서 50여 차례 크고 작은 공연을 치렀고, 올해 초에는 ‘일본 펑크의 시조’인 블루 하츠(The Blue Hearts)의 헌정 앨범에도 참여했으니 일본 진출이 ‘뻥’은 아니다. 아, 그 사이 작년에 ‘붉은 악마’ 주최로 제작한 월드컵 응원 음반 [꿈은 이루어진다]에도 “진군가”라는 곡으로 참여했다.

1996년부터 음반을 녹음하기 시작했으니 이들이 활동한 지도 벌써 8년째이다. 그 사이에 2000년에 발표한 두 장짜리 앨범 [청년폭도맹진가]는 인디 음악으로서는 ‘대박’에 해당하는 3만장(두 장짜리이므로 6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렇게 과거의 일을 늘어놓은 것은 노 브레인, 그리고 ‘조선 펑크’도 이제 역사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시켜 주기 위한 것이다. 역사가 되었다는 말은 열혈 펑크 로커들도 이제는 조금씩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나이들어감의 하나의 징후는 밴드 멤버가 교체되는 현상이었다. 인디 음악계의 기타 신동이었던 차승우가 밴드를 탈퇴하고 새로 ‘어린’ 나이의 김민섭이 가입했다고 한다. 나머지 멤버는 이제 한국 나이로 2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맹진’하던 ‘청년 폭도’는 어떤 노래를 부를까. 이런 상황에서 변신은 자연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필연적일 것이다.

3집 앨범의 타이틀은 [안녕 메리 포핀스]다. 메리 포핀스? 동화에 나오는 착한 마녀다.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컨셉으로 잡은 것에서 느낄 수 있듯 이번 앨범의 메시지는 ‘돌아 가자’다. 노 브레인이라는 밴드의 역사에서 본다면 초기 시절([Our Nation 2]라는 음반이 있다)로 돌아 가는 것이고, 멤버 개개인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청춘예찬’도 ‘난투’도 없다(‘청춘예찬’과 ‘난투’는 [청년폭도맹진가] 앨범의 부제목들이다).

이번 음반의 첫 번째 코드는 ‘낭만’이다. 나이답지 않게 회고가 부쩍 많아졌다. 그 결과 이들의 기존 이미지였던 ‘청년’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모습이다. ‘어린 시절’이라든가 ‘기억’, ‘추억’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상징적이다. “어릴 적 나의 꿈에서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었고…(생략)…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모든 걸 바꿔 놨고”라고 외쳐대는 “작은 외침”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음악은 ‘달리는’ 펑크 록이지만 가사의 메시지는 공격적이라거나 분노에 차 있다기보다는 차분한 성찰이 담겨 있다. 그래도 이 곡은 직선적이고 남성적이지만 다른 곡은 그렇지도 않다. 한 예로 “너의 바다”같은 곡도 “우리가 뿜어대는 거친 소음에 취한 채 마냥 춤추곤 했었던 기억 속의 그의 모습”이라는 가사에서 드러나듯 밴드의 이전의 모습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음악도 ‘펑크’와는 거리가 멀다. 섹스 피스톨스보다는 R.E.M.에 가깝다고 해야될까…. 비유는 비유일 뿐이다. 템포는 빠르지 않게 완급을 조절하고 ‘아름다운’ 키보드 반주가 수놓아준다. 노 브레인의 공간성을 대표하는 ‘바다’라는 테마가 등장하지만 데뷔 앨범에 수록된 이들의 대표곡 “바다 사나이”의 ‘호방한’ 느낌과 달리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곡이다.

두 번째 코드는 ‘일상’이다. 앞서 말했던 ‘일장기 사건’으로 인해 ‘투사’같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게 어떤 부담으로 다가왔는지 이번 앨범에서는 ‘거창한’ 메시지기 없다. 물론 첫 트랙 “태양이 되어”에는 “어두웠던 지날은 지워 버리고 / 모두가 빛을 만들어 새롭게 시작해 본다 / 밝아오지 않는 세상에 태양이 되어”라는 다짐이 들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 곡에서의 다짐의 분위기도 ‘철부지의 발악’이라기보다는 ‘철든 아이의 제안’으로 들린다. “살아가는 길”에서 “희망을 안고 앞을 향해서 가자”는 다짐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다른 트랙들에서는 ‘다짐’을 담은 가사를 찾기는 힘들고 오히려 일상에 대한 잔잔한 묘사가 지배적이다. “너의 바다”는 자신들이 연주하던 클럽과 바다, “자유로 센티멘털”은 (역시 아마도) 차를 타고 질주하는 고속화 도로, “오늘 하루도”는 자신들이 타고 다니는 지하철 2호선의 한 역이 무대가 된다. 때로는 소리지를 때도 있지만, 독백조로 읊조릴 때도 많다.

세 번째 코드는 ‘사랑’이다. 두 번째 트랙 “Little Baby”와 세 번째 트랙 “아리따운 당신과”가 그렇다. 특히 “Little Baby”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업계 속어로 ‘미는 곡’)인 모양이다. 홍보 문구에 의하면 “끈적한 R&B, 주저리 말 많은 힙합, 비애의 락 발라드에서는 들을 수 없는 간단 명료하고 호쾌한 남자의 고백! 불타는 남자의 로망!”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들어 보면 연애의 ‘선수’라고 보기는 힘든 어설픈 남자의 유치하면서도 솔직한 고백이 들어 있다. 세 번째 트랙에 등장하는 ‘아리따운’이라든가 ‘당신’이라는 단어도 ‘펑크’라는 기호(記號)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다른 트랙에는 이런 ‘사나이의 사랑’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지는 않지만 ‘사랑스럽고 정감어린’ 무드가 있는 곡들은 많다. 키보드가 들어간 곡이 많다는 점이나 색서폰까지 동원된 곡(“10분간 휴식”)이 많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분명히’ 논란이 벌어질 것이다. 노 브레인의 음악을 ‘펑크’로 좋아한 사람들, 이른바 펑크 순수주의자들은 “얘들이 돈 벌어 먹으려고 배신했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다른 한편 이들의 음악을 ‘가요’의 한 갈래로 좋아한 사람은 “펑크에 기초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결과는 어떨까. 잘 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고, 잘못 하면 죽도 밥도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는 “남자가 열광하면 기껏해야 ‘언더그라운드의 영웅’이 되고, 여자가 열광하면 ‘주류 스타’가 된다”는 불문율이 있지만 요즘처럼 음반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곧이곧대로 적용하기 힘들다.

상업적 성패는 그들의 일이므로 여기서 더 논할 것은 못 된다. 상업적 성공이 아니라 ‘예술적 성취’라는 기준으로 바꾸면 어떨까. 내 판단으로는 일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 브레인이 ‘돈을 벌기 위해 의도적으로’ 음악 스타일을 바꾼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작위적인 냄새가 나야 할 텐데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몇몇 곡을 들어 보면 음악적 영감도 마르지는 않아서 매너리즘과는 거리가 있다. 문제는 1990년대 펑크로 출발한 세상을 야유하던 일군의 젊은이들의 현재가 그때보다도 더 암울하다는 점이다. 똑같은 암울 그러나 달라진 시대, 그러니 그때와는 다른 ‘낭만적’ 방식으로 풀 수밖에… 20030629 | 신현준 homey@orgio.net

7/10

* 월간 [with] 7월호에 실림

수록곡
1. 태양이 되어
2. Little Baby
3. 아리따운 당신
4. 너의 바다
5. 바람
6. 우중별곡
7. 10분간 휴식
8. 살아가는 길
9. 자유로 센티멘탈
10. 작은 외침
11. 시간 속 산책
12. 우리는 떠나간다
13. 현성이 생각
14. 오늘 하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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