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01105145-KILLSKills – Keep On Your Mean Side – Rough Trade, 2003

 

 

소년, 소녀를 만나다

그녀는 대서양을 건너 런던에 도착했다. 히드루 공항에 그가 마중을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킬스(The Kills)라는 이름의 밴드는 이렇게 첫 발을 내딛는다. 플로리다(Florida)주의 로컬 밴드 디스카운트(Discount)에 몸담았던 여성 보컬리스트 브이브이(VV, a.k.a. Alison Mosshart)는 호텔(Hotel, a.k.a. Jamie Hince)이라는 엉뚱한 별명을 가진 한 영국 청년과 편지를 주고받는다. 추측컨대 남녀사이의 편지하면 떠오르는 시시껄렁한 얘기들이나 적어보낸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들은 음악적 취향을 공유하고 데모 테이프를 교환하면서 마침내 밴드 결성에 의기투합하는 생산적인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들 둘의 결합은 런던에서 나온 음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아메리칸 인디 록의 투박함과 블루스의 질감이 살아있는 꽤나 진득한 거라지 록을 잉태하고 말았다.

밴드를 결성하게 된 동기가 특이해서인지 자꾸만 이들 둘의 사적인 관계가 궁금해진다. 추측이긴 하지만, 여러 정황도 그렇고 서로에 대한 익숙함으로 무심해 보이는 사진 몇 장을 보면 영락없는 연인사이인 것 같다. 그러나 “너의 입술에 내 이름을 새겨두면 넌 결혼 따윈 할 수 없을 꺼야(Get my name stitched on your lips so you won’t get hitched)”라고 말하는 “Hitched”의 엽기발랄한 가사를 접하고 나면 사랑의 하모니나 로맨스 따위는 아예 관심 밖의 일이 되어버린다.

보이/걸 편성의 거라지 록 밴드, 뭔가 떠오르는 이름이 있지 않은가? 우연일 테지만, 데뷔 앨범인 [Keep On Your Mean Side]를 녹음한 곳은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의 [Elephant]가 만들어진 영국의 토 래그(Toe Rag) 스튜디오였으며, 두 앨범의 발매일도 4월 1일로 같다. 이 때문에 킬스는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와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킬스의 로큰롤은 펑크와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지저분한 사운드만큼 저속한 가사 역시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와의 쿨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예예예스(Yeah Yeah Yeahs)와 같은 시끌벅적한 펑크에 갖다 붙이기도 애매하다. 브이브이의 목소리는 도발적인 라이어트 걸(riot girl)의 이미지를 가진 캐런 오(Karen O)의 샤우팅과는 달리 따뜻한 위무와 가시 돋친 독설을 겸비하고 있다. 많은 평자들이 피제이 하비(PJ Harvey)를 언급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오프닝인 “Superstition”은 신경질적인 생톤 기타와 억지로 쥐어짜는 듯한 브이브이의 노래로 비교적 무덤덤하게 진행되다 지저스 앤 매리 체인(Jesus and Mary Chain)을 연상케 하는 과도하게 증폭된 노이즈가 귀를 할퀴고 가는 곡이다. 이어지는 “Cat Claw”은 이미 EP 앨범 [Black Rooster]에 실렸던 캐치한 싱글 넘버로서, 정말 ‘고양이 발톱’같은 날카로운 훅과 스트레이트한 질주감으로 가득 차 있다. “Fuck the People” 역시 드럼 머신의 기계적인 비트와 경쾌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기타 스트로크, 뒤틀린 하모니카 음이 도발적인 그루브를 만들어내고 있다. 앨범에는 신경질적이고 거친 로클롤 넘버만 있는 것은 아니다. “Wait”은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뽑아내고 있는 단조로운 백킹 라인에 슬라이드 기타와 하모니카, 올갠 등이 가세하면서 무성의한 코러스마저 흥얼거리게 하는 매력 넘치는 곡이다. 이 밖에 “Full A U”의 둔중한 헤비 메탈 리프, 스틸 기타가 리드하는 “Kissy Kissy”와 같은 세미 블루스 넘버, 비교적 조신한 브이브이의 보컬을 들을 수 있는 “Gypsy Death & You”와 같은 포크송도 있다.

사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가 나오기 이전만 해도 남녀 듀오는 강력한 출력을 내뿜는 록 밴드의 편성으로는 다소 빈약해 보였다. 그러나 각자의 악기에 통달한 3명 이상의 전문적인 연주자들의 조합을 기본 단위로 여기는 밴드 록의 신화는 깨어진지 오래다. 기타를 포함해 대부분의 악기를 호텔이 연주하고 비트 파트를 드럼 머신에 맡겨두는 킬스의 로큰롤에 빈 구석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록 음악을 연애질(?)의 수단으로 삼는 듯 보여 거슬릴지 모르지만, 다른 멤버 눈치볼 일 없는 합주실의 데이트가 좋은 음악을 만드는데 꼭 장애가 되란 법은 없다. 다만 그리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의 관계와 밴드의 운명이 얽혀있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있긴 하다. 사족이지만, 시드(Sid Vicious)와 낸시(Nancy Spungen)가 같이 음악을 만들었다면 킬스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긴 조금 더 비속하고 위악적인 포즈를 취하긴 했을 테지만. 20030629 | 장육 EVOL62@hanmail.net

7/10

수록곡
1. Superstition
2. Cat Claw
3. Pull A U
4. Kissy Kissy
5. Fried My Little Brains
6. Gypsy Death & You
7. Hand
8. Hitched
9. Black Rooster
10. Wait
11. Fuck the People
12. Monkey 23

관련 사이트
The Kills 공식 사이트
http://www.thekills.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