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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 | Pablo Honey | EMI, 1993

 

펑크 Radiohead? – Prove Yourself!

[Pablo Honey](1993)에 대해서 떠오르는 당신의 생각은? – 이제는 곡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클리셰(cliche)가 된 “Creep”이 있는 앨범. 이 앨범에서 라디오헤드(Radiohead)가 보여준 가능성은 그저 “Creep”이라는 정도로 요약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나마 “Creep”도 한국에서는 [록 발라드 컴필레이션] 수록곡으로 들려졌고 앨범 자체가 사랑 받았던 일은 없었다고 보아도 좋다(그런 게 한국식 모델인지도 모르지만).

라디오헤드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앨범은 [The Bends](1995)부터라고 생각되는 것이 대략의 정설이다. 수록곡의 완성도에 있어서도 1집과 2집이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사실이다. 영국 평단의 당시 평가 – 미국 그런지(grunge)의 찌끄러기를 주워 삼킨 영국의 음악 사기꾼 – 역시 그렇게 부당하지만은 않다. 당신이 그런지에 대해서 ‘펑크에 정서적 섬세함을 부여한 위에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였다’라는 정도의 평가를 내린다면 이 앨범이 그런지로 묶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톰 요크(Thom Yorke)의 송라이팅은 펑크에 가깝고 그 위에서 소년의 예민한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만의 사이키델릭한 노이즈 기타톤은 이 앨범에서도 보여지지만 아직까지는 그런지 식의 퍼즈톤과 뚜렷하게 구별될 만큼의 차별성을 드러내진 못하고 있다. 또한 이들 스스로가 구석구석에서 그런지를 의식한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 이들이 그려내고자 하는 정서가 당대의 그런지와 크게 달라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멤버들과 밴드를 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1집에서 이제 막 시작한 밴드의 모습을 보여준다. 톰 요크는 “속삭이지 말고 소리치란 말야(Stop whispering, start shouting)”라거나 “기타는 아무나 칠 수 있어(Anyone can play guitar)” 라고 내지른다. 악기들은 심플하게 두들겨댄다. 이 앨범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라디오헤드의 ‘펑크 밴드’ 시절이다. 그들은 이 시기를 통해서 자신들과 미국 그런지와의 친화성을 발견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경유’에 가깝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좌우간 그런지 혹은 펑크 스타일은 친숙하긴 하지만 이 앨범의 사운드는 때때로 실망스럽다. 그것은 녹음이나 믹싱 상태에 대한 불만과는 별개다. “Stop Whispering”은 단조로워서 지루하고, 톰 요크의 보컬은 겉돈다. 이 점은 누구에게는 신성모독일 수 있겠지만, “Creep”도 마찬가지다. “Thinking About You”는 매력 있긴 하지만 특별하지는 않다. “Prove Yourself”는 좋은 부분도 있지만 기타나 보컬이나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이 앨범은 그들만의 장기가 되는 편곡과 사운드를 아직 제 형태로 갖추고 있지 않다. 즉흥적인 듯한 무중력 상태의 고양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은 그것을 위해서 화성과 기타노이즈를 공학적인 냉정함으로 배치하는 편곡과 사운드? 자기들은 ‘Paranoid라고 말하지만 실은 Android가 아닐까’ 하는 의혹을 던지게 만드는 편곡과 사운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지 식의 연주 – 심플하면서 왜곡된 사운드로 상처받은 정서를 표현하는 연주 – 만으로 치부될 수 없는 대목들이 곳곳에서 귀를 잡아채는데, 그것은 앨범의 뒤쪽으로 갈수록 명확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이 앨범을 빛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첫 곡 “You”에서 보여지는 간주의 심플하지만 서사적인 감흥으로 전개되는 기타의 편곡은 이들이 이후에 보여줄 ‘내성적 서사를 드러내는 사운드’의 초기단면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How Do You?”는 짧지만 불만 없는 트랙이다. 그리고 6번, 인상적인 효과의 인트로로 시작해서 뮤트 스트로크와 같은 괜찮은 아이디어도 들려주는 “Anyone Can Play Guitar”는 라디오헤드적인 펑크, 혹은 그런지의 가장 만족스러운 형태일 것이다. 더구나 톰 요크가 “머리를 길러 짐 모리슨이 되고 싶어(Grow my hair, wanna be Jim Morrison)”라고 짐짓 진지하게 뇌까리는 것을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그만 “아이, 귀여워”하고 볼을 붉힐 만하다. 오 마이 갓. 라디오헤드의 귀여운 시절인 것이다.

그렇게 아직 덜 익은 젊은 사운드를 지나 앨범의 뒤쪽으로 가면 드디어 라디오헤드의 몽환적인 노이즈 사운드에 본격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심플하지만 충분히 성숙한 아름다움으로 구성된 아르페지오로 덮힌 “Lurgee”를 지나 마지막 곡 “Blow Out”이 선보이는 기타 피드백의 목욕탕에 잠겨 있다보면 어느새 앨범이 끝나버린다. 여기까지 들으면 앨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들이 이 때 이미 어떤 밴드를 지향하고 있었는지 아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여기에서 [Kid A](2000)를 예감할 수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긴 하겠지만 그들이 1집에서 얼핏 내보였던 밴드의 지향이 최근의 앨범까지 상당히 일관적으로 지속되어 왔다는 것, 언제나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자신들의 재능을 단순히 소진하지 않고 관리-투자해서 그 지향을 발전시켜왔다는 것은 숨김없는 찬사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런 감흥을 가지고 데뷔앨범인 [Pablo Honey]를 듣는 것은 앨범 발매 당시에는 누리기 어려웠던 행운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이 자신을 증명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성공하고 나니까 이전의 앨범들도 이렇게 재평가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여러분들도, Prove Yourself. | 김남훈 kkamakgui@hotmail.net

 

Rating: 5/10

 

수록곡
01. You
02. Creep
03. How Do You?
04. Stop Whispering
05. Thinking About You
06. Anyone Can Play Guitar
07. Ripcord
08. Vegetable
09. Prove Yourself
10. I Can’t
11. Lurgee
12. Blow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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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Radiohead 공식 사이트
http://www.radiohead.com
Radiohead 한국 팬 사이트
http://www.radiohead.pe.kr

 


“Cr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