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ohead | OK Computer | EMI, 1997 흐드러지게 모여든 아름다움 라디오헤드는 즉흥성을 믿는 밴드가 아니다. “Creep”에 대한 일화를 믿는다면, 그 곡은 그들의 곡들 중 거의 유일하게 즉흥성이 성공을 거둔 경우일 것이다. 이 말이 단정적으로 들린다면, 적어도 [The Bends] 이후의 라디오헤드는 즉흥성을 믿는 밴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음악을 계산적으로 만든다는 것과 그것이 계산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다르다. 대중음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둘을 등가로 놓음으로서 현대의 음악은 산업의 논리에 종속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길 좋아하나, 음악 자체의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성격은 그 등식이 진리인양 행세하는 순간 그것을 가뿐히 뛰어넘곤 하며, 그것이야말로 음악이 갖고 있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힘일 것이다. 허나 여기에 자극받아 산업의 테크놀로지를 초월하고 관장하는 무언가 ― 이를테면 ‘예술혼’의 존재 ― 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면 그 또한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어쨌든, 좋다. 이런 고상한 논의와는 상관없이,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OK Computer]가 음악이 갖고 있는 그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힘을 나타내는 음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전작과 [OK Computer]와의 차이는 응집과 분산의 차이와 같을 것이다. 빈틈없는 기타 텍스처를 구축했던 [The Bends]에 비해 이 음반의 기타들은 종종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들린다. “Airbag”을 들어보자. 각각의 기타는 각각의 영토를 갖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프로그래밍처럼 처리한 드럼 비트나 무뚝뚝하면서도 그루비하게 움직이는 베이스 라인도 이를 모아줄 생각을 하지 않으며, 톰 요크의 흔들리는 보컬과 과대망상적 가사(“성간의 폭발 속에서 / 나는 우주를 구하러 돌아올거야”)는 외려 기타들의 난장을 부추긴다. 곡 전체를 휘감아도는 앰비언트 무드의, 또한 계속해서 튀어나와 반짝거리는, 마지막 부분에서 좌절한 자의 울음처럼 찢기듯이 파삭거리는 일렉트로닉 효과음은 또 어떠한가. 계속 들을수록 이 음반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소리들을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점은 급변하는 구성을 갖는 “Paranoid Android”도 마찬가지이며, 철금으로 빚은 아름답고 단순한 선율을 루핑하는 “No Surprises” 또한 그렇다. 일견 청승맞은 발라드처럼 들리는 “Exit Music (For A Film)”, 후일의 “I Might Be Wrong”과 흡사한 리듬 섹션으로 요동치는 “Electioneering”도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음반의 곡들은 청자의 주의를 멜로디와 보컬이라는 기본적인 감상 요소에 머무르게 하지 않지만, 섬세한 음률과 톰 요크의 목소리는 멜로디와 보컬에 대한 주의가 흐트러지도록 놓아두지도 않는다. 기타에 대한 배려와 새로 사고하기 시작한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관심 양쪽을 모두 잡아내는 나이젤 갓리치(Nigel Godrich)의 명민한 사운드 프로듀싱이 청자의 감상을 돕는다. 산만하여 마땅한 곡들의 텍스처가 총체적인 일관성을 갖는 것은 이러한 연유이다. 그러나 이 총체성은 보통의 곡들처럼 들릴 부분을 강조하고 들리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숨김으로써 이루어지는 총체성이 아니라 곡들의 모든 요소를 꺼내어 펼쳐놓는, 즉 문자 그대로의 총체성이다. 오케이. 여기서 ‘포스트 록’이라 불리는 일군의 음악적 흐름을 떠올리거나 개념으로서의 ‘포스트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판을 너무 크게 벌일 필요는 없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이 음반은 정좌하고 들어줘야 할 것 같은 ‘난해한 실험적 록’이라기보다는 휴대용 CDP만 있다면 어디서나 즐기도록 제작된 대중적 록의 범주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이 음반의 위대함도 사실은 거기서 나온다. 좋은 퍼즐은 벽걸이 대용으로 집에 걸어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사는? 어떤 평자는 이들의 가사를 통해 사이버펑크(cyberpunk)에 대한 상념을 펼치기도 하고, 혹자는 세기말의 혼란스런 정서와 기계문명에 대한 우수에 찬 동경을 읽어내기도 한다. 어떤 쪽이건 간에, 이들의 가사가 아무리 혼란스럽게 보인다 해도, 이는 세계와 자신에 대한 명료한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가사들이다. 단어들은 파편처럼 흩날리며 그 배치는 초현실적이고 이미지들은 냉소적이나 화자는 약물에 중독된 것도 아니며, 현실을 떠날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자살에 대한 충동은 정부를 전복하자는 나른한 망상으로 진화하고(“No Surprises”), 여피들의 네트워킹은 토악질나게 역겹지만 떨어지는 비는 신이 그들의 자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증거한다(“Paranoid Android”). 향수병에 걸린 외계인은 지하에 숨은 채 언제나 긴장하며 살지만, 동시에 자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기를 희구한다(“Subterranean Homesick Alien”). [The Bends]에서는 심연이 없는 세상을 향해 쏘아보냈던 눈길이 허무하게 되돌아왔지만, [OK Computer]는 그 허무감을 내부의 심연과 연결시키며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시도한다. 편집증 환자이나 안드로이드는 아닌 상태, 역겨움을 견디며 살아나갈 수 있는 상태,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시는 순간에도 컴퓨터의 커서처럼 두 눈을 깜박거릴 수 있는 상태의, 어떤 인식 말이다. 이 음반은 오랫동안 록 밴드의 귀감이 될 소리들을 담고 있다. 기타 록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급의 경지에 이른, 1990년대 후반을 빛낸 걸작 음반이라는 찬사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음반의 가사를 보면서 순간 베케트(Samuel Beckett)를 떠올린 사람이 나뿐인지는 모르겠지만, 음반이 갈망하고 있는 것은 부조리로 가득 찬 세계에서 떠나는 것이다. 음반의 초현실적인 울림들은 그 점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동시에, 그 소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를 떠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부조리한 세계에서 탄생한 음률 자체의 힘으로 증명해낸다.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Rating: 10/10 수록곡 1. Airbag 2. Paranoid Android 3. Subterranean Homesick Alien 4. Exit Music (For A Film) 5. Let Down 6. Karma Police 7. Fitter Happier 8. Electioneering 9. Climbing Up The Walls 10. No Surprises 11. Lucky 12. The Tourist 관련 글 Radiohead [Pablo Honey] 리뷰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The Bends] 리뷰 (1) – vol.2/no.21 [20001101] Radiohead [The Bends] 리뷰 (2)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OK Computer] 리뷰 (1) – vol.2/no.21 [20001101] Radiohead [Airbag/How Am I Driving?] EP 리뷰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Kid A] 리뷰 (1) – vol.2/no.19 [20001001] Radiohead [Kid A] 리뷰 (2)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Amnesiac] 리뷰 (1) – vol.3/no.11 [20010601] Radiohead [Amnesiac] 리뷰 (2)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I Might Be Wrong: Live Recordings] EP 리뷰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Hail To The Thief] 리뷰 – vol.5/no.12 [20030616] Radiohead [In Rainbows] 리뷰, 20080113 Radiohead [The King Of Limbs] 리뷰, 20110310 라디오헤드 신드롬의 정체 – vol.5/no.11 [20030601] 여섯 가지 가능성들: 새로운 두근거림을 향하여 – vol.10/no.3 [20080201] 관련 사이트 Radiohead 공식 사이트 http://www.radiohead.com Radiohead 한국 팬 사이트 http://www.radiohead.pe.kr “No Surpri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