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존 케이지는 자기 작품을 모방하는 이들만을 좋아했을 뿐이에요. 난 그가 보기에 좀 너무 섹시하고 야한 거에 몰두했죠.”(주14) 그런 개념적인 돌파는 오노 요코로 하여금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던 다른 예술가들과 더불어 뉴욕에서 하나의 씬(scene)을 창출하게끔 했다. 당시 오노는 “해프닝의 여제사장(High Priestess of Happenings)”로 알려지게 되었고, 여러 차례 작품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주15) 1960년대 초에 오노는 토시와 이혼하고 재즈 음악인 겸 영화감독인 토니 칵스(Tony Cox)와 재혼함으로써 전위 예술 공동체 안에 큰 족적을 남기는데, 칵스는 오노의 대규모 행사들을 후원하고 그녀의 이름을 현대 미술계에 퍼뜨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악명은 문제를 일으켰는데, 1960년대 중반에 이르면 오노의 인기는 도가 지나칠 정도에 이른다. “나는 전위 예술계에 속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주류) 세계에서 그만큼 컸던 것도 아니었어요… 1967년은 매우 쓸쓸하게 지나갔죠, 마치 아무 데도 아닌 곳에 있었던 것처럼.”(주16) 오노는 그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전위 예술계는 세상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이들로 이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계 여성에 관한 낡은 고정관념은 오노가 접했던 이들로부터 드러나곤 했다. 무엇보다도 존 케이지가 오노는 그녀가 받은 훈련 때문에 가수로서 더 성공할 것이라고 얘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이야기는 여성이 완결된 예술 행위 — 창작과 수행이라는 양면 — 를 통제할 수 없다는 흔한 고정관념에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케이지와 같은 이들은 오노를 일종의 깜짝 신품(novelty), 12음 작곡법 진보 과정의 곁가지 정도로 치부한 것이다. 오노는 자신의 음악 스타일의 발전에 관해서 “어떤 이들은 그게 너무 꾸밈이 심하고 연극적이라고 평하더군요… (하지만) 난 혼란(turmoil)의 소리에 더 관심이 있었죠”라고 술회했다.(주17) 오노는 런던의 은둔적이고 편견에 찬 전위 예술계와 맞서 싸우면서, 그동안 이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해법을 찾아냈다. 1966년 오노는 런던에서 처음으로 여성 단독 전시회를 주관했다. 그 시사회에는 존 레논이 참석했고, 이후 둘의 교류는 시작되었다. 1967-68년에 걸쳐 둘은 친구 관계에 머물러 있었다. 레논은 런던에서 열린 오노의 또 다른 전시회에 재정을 대 주었고, 오노는 자신의 보헤미안적 생활을 지속하면서 로얄 앨버트 홀 무대에 유명 프리 재즈 음악인인 오넷 콜먼(Ornette Coleman)과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오노 요코, [뾰족함(Pointedness)], 1964/66년, 플렉시글래스 받침 위에 수정 구슬 6. “록 비트를 들었을 때, ‘바로 이게 내가 찾던 거야!’라고 생각했죠. 그리곤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어요.”(주18) 1969년에 이르러 레논과 오노 각자의 결혼 생활은 악화되어 갔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둘은 서로에게서 위안을 찾았다. 둘의 첫날 밤, 이들은 [Two Virgins]라 이름붙인 첫 앨범을 만들었다. 이것은 설명을 불허하는 ‘구체 음악'(musique concrete) 작품집이다.(주19) 통상적인 음악성의 관념에 접근하는 어떤 것도 이 음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신, 두 처녀 총각이 음악과 예술의 극한을 천진난만하게 탐색하는 소리가 담겨 있다. 이 앨범은 두 사람이 전면 나체로 포즈를 취한 충격적인 표지를 달고 발매되었는데, 이에 대한 격분이 곧 뒤를 이었다. 레논은 당대 최고의 로큰롤 반항아의 표상이 되었지만, 그 반항의 댓가는 컸다.(주20) 레논은 영국에서 비틀즈가 예수 그리스도보다 위대하다는 말이 불러온 스캔들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었던 것처럼, 다른 여자, 그것도 아시아계 미국인 때문에 아내를 버린 데 대한 일반 대중의 비웃음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없었다 (오노는 “원숭이”이자 “John Rennon’s Excrusive Gloupie” [R과 L 발음을 혼동하는 아시아계에 대한 조롱]로 묘사되었다).(주21) 이는 이 상황에서 레논이 할 수 있었던 가장 반항적인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대중에게는 배신행위로 보일 뿐이었다. 얼마 후인 1970년 비틀즈가 해산하자, 많은 이들은 오노와 레논의 관계야말로 밴드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었던 주원인이라고 비난했다. [Unfinished Music No. 1: Two Virgins]의 나체 표지 [Two Virgins]와 곧이어 비슷한 성격을 지닌 [The Wedding Album]을 내고 나서, 둘은 상호 보완적인 각자의 독집을 [Plastic Ono Band]라는 같은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 앨범들은 전작들에 비한다면 좀 더 관습적이었다. 존의 앨범은 4-6분 가량의 군살을 뺀 팝송 모음으로 그의 비틀즈 시절 일부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단순한 가사를 담은 반면, 요코의 앨범에서는 그녀의 예측불가능한 경향이 지속되었다. 평생을 전통적인 대중음악의 맥락에서 연주해 온 음악인들(레논, 링고 스타, 에릭 클랩턴 등)로부터 오노는 아주 이상망측한 소리들을 구슬려내었다. 이 앨범은 록 평론가들로부터 걸작으로 인정받았지만, 레논의 앨범에 비교해 볼 때 그 난해함으로 말미암아 일반 대중에게는 무시당했다. 평론가 질리언 기어(Gillian Gear)는 이 작품이 그토록 불운하게 된 데는 “호기심 있는 청자들도 전위음악과 로큰롤을 눈부시게 융합한 이런 매혹적인 작품을 위치시킬 전후 맥락을 알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썼다.(주22) “Open Your Box” from [Plastic Ono Band](1970) 7. 결론 이유야 무엇이든 간에 [Plastic Ono Band]와 그 이후 앨범들, 전위주의적 걸작 [Fly], 원시적 여성주의(proto-feminism) 작품 [Feeling The Space] 등은 대중들에게도, 음악 잡지들에 종종 등장하는 “시대를 빛낸 명반” 목록에서도 무시당해왔다. 이는 분명 오노가 만들어온 음악의 유형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로버트 휴즈(Robert Hughes)의 저서 [새로운 것의 충격]에서 언급되었듯이 “전위 예술 신화의 본질은 예술가가 선구자라는 데 있다. 진정 의미심장한 예술 작품이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주23) 이 말을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오노야말로 다양한 장르들의 명백한 선두주자로 간주할 수 있다. 그녀의 독특한 보컬 스타일은 1970년대 후반 수많은 펑크 밴드들에 의해 모방되었고, 그녀가 행한 이질적인 스타일들의 전유(專有)는 1980년대 초의 포스트 펑크 운동을 예시했다. 남자들 만큼이나 쉽사리 로킹할 수 있는 여성에게 고유한 여성주의적 기조(基調)를 띠고 있었던 오노는 또한 1990년대 초에 들어 추동력을 얻기 시작한 라이오트 걸(riot grrrl) 운동의 대표적 밴드들인 비키니 킬(Bikini Kill)이나 슬리터-키니(Sleater-Kinney)보다 한참 앞서 온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음악인들의 작품에 주요한 영향을 준 인물들 중 오노가 거론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Dar Williams, “I Won’t Be Your Yoko Ono” from [The Green World](2000) 앞서 암시했다시피, 이런 사정의 배후에는 오노가 아시아계이자 여성이라는 사실이 놓여 있다. 조이 프레스(Joy Press)와의 인터뷰에서 오노는 자신의 역사적 유산과, 같은 종류의 음악적 진흥에 기여한 다른 음악인들 간에 존재하는 불균형에 관해 언급한다. “라몬테 영(LaMonte Young)의 재능은 나도 인정하지만, (나 또한)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합니다. 알다시피…예술가들 사이에는 항상 자존심(ego) 문제가 있거든요. 그가 하고 있는 일을 계속 밀고 나가려면 엄청난 자부심이 필요한 거겠죠. 우리 모두 다 그랬으니까요.”(주24) 오노의 근심은 현실적이다. 전위 음악에 대한 그녀의 기여는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그녀의 록에 기초한 작업에 주로 초점을 맞춰 온 경향이 있는 음악 비평가들로부터도 대부분 무시되어 왔다. 이는 대다수의 여성 예술가들을 괴롭혀온 근본적인 문제로, 사이먼 레이놀즈(Simon Reynolds)와 조이 프레스의 저서 [성 반란(The Sex Revolts)]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선명성을 위해 예술적 힘을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이해받기를 포기하고 예술적 표현의 순수성을 선택할 것인가?”(주25) 오노는 예술적 표현의 순수성을 선택했고, 따라서 끊임없이 오해받아왔다. 오노는 혁명가로 간주되는 대신에 “미쳤거나 아주 짜증나게 하는”(주26) 위치로 격하되었다. 조이 프레스가 지적하듯 “남성 예술가들이 위태로운 짓을 하면 멋들어지고 대담한 것으로 취급되지만, 여성이 같은 일을 하면 의심받기나 할 뿐이다.”(주27) 음악에서 여성의 공헌을 남성에 대한 이항적 대립물로 보는 것은 흔한 독단이다. 남성에게는 목구멍으로부터의 신음에서 여성화된 가성(假聲)까지의 다양한 변화가 허용되는 반면, 여성은 남성이 쓴 곡 안에서 일정하게 사용가능한 보컬 사운드의 체계들로 격하된다. 오노는 특유의 보컬 스타일로 이런 여성적 제약을 깨뜨린 최초의 인물들 중 하나로서, “여성, 고통, 분노, 절망의 본능적 표현”(주28)을 제시했고, 그것이 가져온 결과들을 감내해 왔다. 그녀에 대한 비평적, 대중적 반응은 가혹한 것이었지만, 오노의 비타협적인 예술적 성과물을 놓고 볼 때 그녀가 다른 길을 걸었을 리는 없어 보인다. 1996년 뉴욕 센트럴 파크 서머스테이지 공연 앞으로 오노 요코의 작품들을 비평적으로 논하는 데 있어서, 인종 문제와 비명(悲鳴)이라는 요소에 관련된 보다 심도있는 독해가 유용할 것이다. 오노를 뉴욕 시의 인종적 배경에 위치시키려는 시도와 관련된 근본적인 난점은 당시 그녀와 비견할 만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매우 적었다는 단순한 사실에 있다. 있다고 해야 이혼 후에 일본으로 되돌아간 오노의 첫 남편, 그리고 한국계 시각 예술가 백남준 정도일 텐데, 이 둘 다 남성이고 오노와 비교할 만한 것이 많지 않다. 비명에 관해서는 앞서 인용된 사이먼 레이놀즈와 조이 프레스의 책에서 그 효과가 점검되고 있지만, 이들의 연구는 오노가 전개하는 무언적 반항(wordless rebellion)을 상대적으로 경시하고 있다. 여성들을 괴롭혀 온, 내부의 격동을 소리로 낼 수 없는 이 무능력은 향후 연구 과제로 남겨둘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노를 두드러지게 만든 이상한 주변 상황들 덕택에 여러 차례 오염된 그녀의 평판 때문에라도, 오노를 비평적으로 재평가할 수 있는 어떤 요소든 도전해 볼 만한 일인 것이다. 20030618 [후주] 주14: 찰스 맥캐리, “John Rennon’s Excrusive Gloupie” 246쪽 주15: Sari Gurney, [Yoko Ono: A Biography](2002) 주16: 조이 프레스, “Yoko Ono” 주17: 조디 덴버그, “Yoko Ono In 1997” 주18: 조이 프레스, “Yoko Ono” 중 오노의 말 주19: 구체 음악은 “녹음 과정에서 종종 변이되고 왜곡되는 악기음 및 자연음들로 구성되는 전자음악”으로 정의된다 (http://www.dictionary.com). 주20: Simon Reynolds and Joy Press, [The Sex Revolts](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95), 216쪽 주21: Albert Goodman, [The Lives Of John Lennon](Chicago: Chicago Review Press, 2001), 255쪽과 찰스 맥캐리, “John Rennon’s Excrusive Gloupie” 주22: Gillian Gear, “Yoko Ono Plastic Ono Band” (http://www.thestranger.com/1999-05-06/excellent5.html) 주23: Robert Hughes, [The Shock of the New] (London: BBC Publications, 1980), 366쪽 주24: 조이 프레스, “Yoko Ono” 주25: 사이먼 레이놀즈, 조이 프레스, [The Sex Revolts], 366쪽 주26: 조이 프레스, “Yoko Ono” 주27: 조이 프레스, “Yoko Ono” 주28: Holly Kruse, “Race,” [Key Terms in Popular Music and Culture], edited by Bruce Horner and Thomas Swiss (Malden: Blackwell Publishers, 1999), 90쪽 관련 글 오노 요코: 오해와 편견을 무릅쓴 대중적 전위 예술가의 삶 1 오노 요코: 오해와 편견을 무릅쓴 대중적 전위 예술가의 삶 2 Yoko Ono [Fly] 리뷰 – vol.5/no.12 [20030616] Yoko Ono [Season Of Glass] 리뷰 – vol.5/no.12 [20030616] 관련 사이트 스타일러스 매거진 영어판 원문 http://www.stylusmagazine.com/articles/article030512page01.html 오노 요코 공식 페이지(Capitol Records) http://hollywoodandvine.com/yokoono AIU: A Yoko Ono Box http://www.kaapeli.fi/aiu Instant Karma 오노 요코 페이지 http://www.instantkarma.com/yokomenu.html 뉴욕 일본 협회 오노 요코 페이지 (일본어) http://www.new-york-art.com/Artist-Yoko-Ono.htm 플럭서스 예술 운동이란 무엇인가? http://www.kunsttrip.net/fluxus.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