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ko Ono And The Plastic Ono Band – Fly – Apple/Rycodisc, 1971/1997 Becoming-woman, Becoming-animal, Becoming-imperceptible… ‘전위 음악을 하는 이라면 누구든 애초부터 일정 정도의 적대감과 경멸을 감수할 각오를 하기 마련이다. 그게 다름아닌 오노 요코라면…가시돋친 말이나 야유가 비례해서 늘어나기만을 기대할 수 있을 뿐. 대다수 사람들이 요코의 특기인 막나가는 지저귐 같은 데 취미가 없어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설령 그녀가…아레사 (프랭클린)처럼 노래한다 해도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 레스터 뱅스(Lester Bangs), [Yoko Ono/The Plastic Ono Band](1970) 리뷰, [롤링 스톤] 77호. 극단적인 증오의 반대편에서 열렬한 추종이나 경애(敬愛)를 발견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오노 요코는 항상 이런 양 극이 교차하는 ‘강도(intensity) = 0’의 지점, 태풍의 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항상 앞을 내다보는 이 전위 예술가에게 유리한 것이어서, 그녀에게 이를 갈던 비틀즈의 동시대 팬들은 이제 힘을 못 쓰고 늙어가는 반면 오노 자신은 몇 해 전 MTV에서조차 대중음악계의 선구적 여성 아이콘으로 재조명받는 등 칠순의 인생 황혼기에 더욱 더 빛을 발하고 있다. 할 말을 하는 데 거침없었던 레스터 뱅스같은 이조차도 위에 일부 인용된 리뷰에서 결론적인 칭찬의 말을 몇 마디 혹평과 뒤섞어 내놓아야만 했던 1970년대 당시의 분위기와 비교해보면, 최근의 오노 요코 르네상스는 괄목할 만한 것이다. 전작과 더불어 플래스틱 오노 밴드 시절의 양대 걸작으로 꼽히는 [Fly]는 대중음악과 전위음악이 성공적으로 결합된 예로서, 이보다 좀 앞서거나 같은 시기 토니 콘래드(Tony Conrad), 존 케일(John Cale), 라몬테 영(LaMonte Young), 테리 라일리(Terry Reily) 등의 공동작업, 그리고 이후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의 [Big Science](1982)나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Songs From Liquid Days](1986) 등과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올뮤직 가이드(allmusic.com)의 네드 래기트(Ned Raggett)가 예리하게 지적한 것처럼, 이는 또한 당대 독일의 크라우트록, 특히 다모 스즈키(Damo Suzuki)의 보컬을 앞세운 캔(Can)의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와 같은 음악사적인 무게에도 불구하고, 이 기나긴 더블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쉼없이 감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십여분은 예사로 넘기면서 갖가지 방식으로 귀를 괴롭히는 오노의 목소리는 듣는 이에게 강철같은 신경을 지닐 것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뾰족한 못으로 양철판을 그을 때나 칠판 위에서 백묵이 잘못 미끄러질 때 나는 삑 소리에 소름끼쳐 견디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음반은 전혀 유쾌한 경험이 아닐 것이다. 그런 날카로운 소리들을 견뎌낼 수 있다 해도, 문자 그대로 무의미한 고함과 비명, 괴성, 신음의 연속을 주의깊게 듣고 있기란 여간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다. 그나마 전작이 온통 그런 곡들로 채워져 있는 데 반해 이 음반에는 정상적인 ‘노래’에 해당하는 곡들이 몇몇 껴 있어서 청자로 하여금 숨을 돌릴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첫 곡 “Midsummer New York”의 엘비스풍 로큰롤은 잔뜩 긴장해있는 청자를 일단 무장해제시킨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붕 떠있는 듯한 오노의 목소리는 두 번째 악절에 접어들기가 무섭게 ‘shaking, shaking’이란 가사를 반복하면서 묘하게 박자를 절기 시작한다. 올스타 진용 밴드의 매끈한 로큰롤 반주 위에서 오노의 목소리는 빠져나갈 기회라도 엿보는 듯 불안하게 맴돌지만 끝끝내 제멋대로 막나가지는 않는다. 두 번째 “Mindtrain”도 리듬 섹션의 기차 박동과 도브로(dobro)가 흉내내는 경적소리는 뒤를 따르는 오노의 ‘지저귐’을 무작위적인 혼돈으로부터 건져내면서 곡에 일정한 질서와 구조를 부여한다. 그러나 “Mind Hole”에서 싸이키델릭한 잔향에 푹 싸인 채 영탄조의 스캣은 이런 규율을 느슨하게 만들고, 마침내 “Don’t Worry Kyoko”에 이르면 오노의 목소리는 완연히 본색을 드러낸다. 잔뜩 바이브레이션을 준 채 대략 15초를 혼자 끌어가는 그녀의 외마디 소리는, 이후 도전하듯 밀고 들어오는 에릭 클랩턴의 하드 록 기타 리프에도 아랑곳 않고 좌충우돌하면서 제목의 가사를 주문 외우듯 되풀이한다 (제목의 ‘쿄코’는 오노와 전남편 사이에서 난 딸의 이름이다). “Mrs. Lennon”의 가라앉은 아름다움을 더욱 더 인상깊게 만드는 것은 정신사나운 바로 앞 곡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전환된 분위기다. 언제 그랬냐는 듯 광기(狂氣)를 싹 거둬들이고 서정적인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에 맞춰 오노는 곱디곱게 노래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또한 듣는 이를 편안하게 해주지 않는다. 이는 ‘우리 아이들이 전쟁터에 나가야 하나요 / 그럼, 괜찮아, 세상의 절반은 항상 죽어가는 걸’이라는 암울한 노랫말 때문만은 아니다.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보컬리스트에게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녀의 노래는 곳곳에서 음정이 조금씩 어긋나고, ‘alright’과 같은 단어를 발음할 때는 일본식의 억양이 생생히 드러난다. 의도한 바였든 아니든, 이런 식으로 오노는 대중음악/전위음악계에서, 그리고 백인 중심의 미국/유럽 사회에서 국외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곡이 지나면 오노의 목소리는 다시 고삐가 풀린다. 훵키한 리듬에 맞춰 소리지르다 자꾸만 뭔가 이것 저것 열라고 요구하는 “Hirake”나, 퉁퉁 튀어오르는 타블라(tabla) 장단에 맞춰 알아들을 수 없는 경(經)을 읊는 듯한 “O’Wind”, 그리고 8가지의 악기들이 자동연주되도록 만들어진 조 존스 톤 데프 뮤직 코(Joe Jones Tone Deaf Music Co.)라는 기계 소리에 묻혀 오노의 목소리도 그 일부분인 것처럼 들리는 “Airmale” 등. 밴드의 이름마따나 매우 조형적인(plastic) 그녀의 목소리는 끊임없는 돌연변이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게 정점에 도달하는 것은 타이틀 트랙인 “Fly”이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전자음을 제외한다면 무반주로 진행되는 이 23분짜리 목소리 ‘음악’은 오노가 만든 동명의 단편 영화에 사운드트랙으로 쓰였던 것이다. 발가벗은 여인의 몸 위를 날아 다니는 파리의 움직임을 담은 영화의 진행에 맞춰 요코의 목소리는 사람 소리에서 파리 소리로, 그리고 분간할 수 없는 전자적 잡음으로 이리 저리 변이한다. 이미 1960년대부터 음악뿐 아니라 행위 예술, 영화 등을 통해서 여성주의, 특히 여성의 몸과 관련된 문제를 도발적으로 제기해 온 오노 요코의 선견지명은 실로 놀라운 것이다. 그녀가 “Fly”를 통해 포착한 일련의 변이, 즉 미분화된 목소리가 여성으로, 동물로, 그리고는 지각불가능한 미립자적인 것으로 생성되는(becoming) 과정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해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 ‘음악은 인류만의 특권이 아니다… 음악의 문제는 인류만큼이나 자연, 동물, 원소, 사막 등에도 고루 스며들어 있는 탈영토화하는 힘의 문제이다. 문제는 인간에게서 어떤 것이 음악적이지 않은가보다는 차라리 자연 속에서 어떤 것이 이미 음악적인가에 있다… 여성 되기(becoming-woman), 아이 되기, 동물 되기, 혹은 분자(分子) 되기를 통해 자연은 그 힘, 음악의 힘을 인류의 기계들, 즉 공장이나 폭격기의 굉음에 대치시킨다.’ (들뢰즈와 가타리, [천의 고원] 10장) 이들이 다른 곳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술은 항상 철학이나 과학보다 한 걸음 앞서나가는 것인가. 20030617 |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 9/10 수록곡 Disc 1 1. Midsummer New York 2. Mindtrain 3. Mind Holes 4. Don’t Worry, Kyoko (Mummy’s Only Looking for Her Hand in the Snow) 5. Mrs. Lennon 6. Hirake 7. Toilet Piece/Unknown 8. O’Wind (Body Is The Scar Of Your Mind) Disc 2 1. Airmale 2. Don’t Count The Waves 3. You 4. Fly (부분 발췌) 5. Telephone Piece 6. Between The Takes 7. Will You Touch Me 관련 글 오노 요코: 오해와 편견을 무릅쓴 대중적 전위 예술가의 삶 1 오노 요코: 오해와 편견을 무릅쓴 대중적 전위 예술가의 삶 2 Yoko Ono [Fly] 리뷰 – vol.5/no.12 [20030616] Yoko Ono [Season Of Glass] 리뷰 – vol.5/no.12 [20030616] 관련 사이트 오노 요코 공식 페이지(Capitol Records) http://hollywoodandvine.com/yokoono AIU: A Yoko Ono Box http://www.kaapeli.fi/aiu Instant Karma 오노 요코 페이지 http://www.instantkarma.com/yokomenu.html 뉴욕 일본 협회 오노 요코 페이지 (일본어) http://www.new-york-art.com/Artist-Yoko-Ono.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