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llica – St. Anger – Vertigo/Universal, 2003 Anger Management 나는 [Load](1996)와 [Reload](1997)를 좋아했다. 그것이 변절이냐 변화냐, 스래쉬 메틀이냐 얼터너티브 메틀이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Until It Sleeps”나 “Fuel”이 ‘라디오 프렌들리’했다지만 그런 곡을 만들 수 있는 밴드는 메탈리카 뿐이었고, 중요한 것은 그 점이었다. [Garage Inc.](1998)도 좋아했다. 아마 그것은 1990년대의 가장 멋진 커버곡 모음집 중 하나일 것이다. 원곡과 메탈리카의 커버 버전은 닮은 듯 하면서도 달랐으며, 멤버들은 진심으로 즐기면서 그 곡들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S & M](1999)은 내지 않는 것이 좋았을 음반이었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메인 테마처럼 편곡된 메탈리카의 곡들은 살아생전 스스로 세운 동상처럼 거대하고, 웅장하며, 공허했다. 그들이 음악 산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엔터테인먼트란 그런 것이며, 좋아한다는 것 또한 그런 것이다. 이유가 길어지면 구차해진다. 그래서 메탈리카가 초기 스타일로 되돌아가는 음반을 만들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마음을 바꾸길 바랬다. [Master Of Puppets](1986)와 […And Justice For All](1988)은 돌이킬 수 있는 음반이 아니다. 그것이 스래쉬의 경전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음반 자체의 탁월함도 탁월함이었지만 당시 메인스트림으로 치고 올라오던 스래쉬 자체의 활력이 유기적으로 결합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Metallica](1991)에서 밥 록(Bob Rock)을 만나면서 완벽하게 융합했고, 그 음반은 골수 록 팬과 일반 팝 팬 모두를 만족시키는 몇 안 되는 음반이 되었다. 그러니, 그만하면 된 게 아닌가. 그저 지금처럼, 지구 최후의 공룡 록 밴드다운 모습을 유지하며 만인의 귀감으로 남으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곡당 평균 길이가 7분에 달하는 이 음반이다. 오프닝인 “Frantic”에서부터 메탈리카가 택한 방향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빠르게, 거칠게, 헤비하게. 초장부터 몰아붙이는 기타와 드럼은 광폭하게 청자를 후려치며, 이는 음반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Frantic, tick-tick-tick-tick-tick tock, frantic, tick-tick-tick-tick-tick tock. 예의상 넣었던 것 같은 “The Unforgiven II”처럼 말랑한 곡은 없다. 곡의 변화는 급격하고(“Frantic”, “St. Anger”, “Shoot Me Again”), 청자를 휘두르려는 야망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러나 생각만큼 복잡한 구성은 아니며, 대개는 버스-코러스의 구조를 약간씩 변화시키고 메탈리카 특유의 변칙적인 리듬을 강화한 뒤 길게 늘린 것이다. “All Within My Hands” 정도를 제외하면 음반의 소리들은 전체적으로 초창기 스래쉬의 직선적인 에너지를 살리고자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니 비바 메탈리카, 한번 외치고 음반가게로 달려가야 하나? 초도 한정반에 있는 스티커와 뱃지가 탐이 난다면 그렇게 해도 좋을 것이다. 우선 눈에 띄는 문제는 곡이 길다는 것이다. 하지만, 길다니? 메탈리카의 곡들은 언제나 무지막지한 길이를 자랑하지 않았던가? “Master Of Puppets”는 8분 30초가 넘는 곡이었다. 그러나 복잡다단하게 변하는 구성과 무드, 템포 속에서도 일관된 흐름을 잡아내는 그들의 능력은 청자로 하여금 ‘Master! Master!’를 따라부르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One”도 그랬고, “No Remorse”도, “Welcome Home”도 그랬다… 그렇다. 나는 지금 신보의 곡들이 엉성하다는 말을 한참 돌려 하는 중이다. 음반의 곡들은 스래쉬 특유의 복잡하고 호방한 구성이나 최근 메탈리카의 펑크-얼터너티브 메틀 스타일 중 어느 것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커크 해밋(Kirk Hammett)의 기타 솔로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부르짖다 멈추고 부르짖다 멈춘 뒤 부르짖다 멈춘다. 듣고 건너갔던 부분이 CD가 튀기라도 한 듯 또 들려서 최면 상태에 빠질 때도 있다. 첫 싱글 “St. Anger”를 들어본 이라면 쉼없이 몰아치다가 갑자기 느긋한 기타 아르페지오에 맞춰 노래하는 구성이 얼마나 초현실적이었는지 기억날 것이다. 또렷하고 탄력있는 리프를 바탕으로 판테라(Pantera)처럼 쏘아붙이는 “Dirty Window”가 그나마 다른 생각을 잊게 할 뿐, 대부분의 곡들은 듣는 도중에 남은 시간을 확인해보고 싶어진다. 다음으로 걸리는 것은 사운드이다. 아마 그들은 ‘거라지’ 시절의 활력을 추억하며 음반을 만든 것 같다. 밥 록의 장기는 악기간의 사운드를 또렷하게 구분하는 동시에 각 파트의 볼륨을 가능한 한 최대로 끌어올리면서도 그것들이 둔중하게 충돌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었고, 이는 특히 드럼 파트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프로듀싱 방법이었다(“Sad But True”의 인트로를 기억해보자). 이번 음반에서 밴드와 록은 다른 길, 즉 날것(raw) 그대로의 소리를 내는 쪽을 택했고, 결과는 나쁘다. 모든 소리가 짓뭉개졌고, 복잡한 리듬들은 망가진 채 들리며, 그렇지 않아도 산만한 곡들은 우리에서 날뛰는 코끼리처럼 중구난방으로 울린다. 라스 울리히(Lars Ulrich)의 드러밍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구매자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것이다. 곡과 사운드를 장악하는 그의 연주는 여전히 빛나지만 스네어 드럼을 왜 이렇게 쩡쩡거리게 녹음했는지는 이해가 안 간다. 원초적이지도 파격적이지도 않다. 헤비 메틀 유령이 부엌에서 프라이팬을 두드릴 때 날 법한 소리가 난다. 마지막으로, 이런 걸 언급하는 것은 마음에 안 들지만, 보컬 문제를 말해야 할 것 같다. 음반에 실린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의 목소리를 들을 때 ‘맛이 갔다’라는 표현 외에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달리 부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듣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뉴 메틀 스타일의 ‘스크림’을 선보이는 “Frantic”이나 “My World”는 듣는 입장에서 민망스러울 정도로 목에 힘을 준 흔적이 역력하다. 더하여 그 ‘스크림’은 취한 사람처럼 자주 흔들린다. “Some Kind of Monster”에서 “We the People”이라고 그가 십수 번 절규할 때, 나는… 미안하게도, 그만 웃고 말았다. 메탈리카는 헤비 메틀의 진정한 마스터였다. 그들이 내놓았던 음반들은 헤비 메틀과 대중 음악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음반들이었고, 그런 걸작들을 쏟아낸 뒤 뛰어든 쇼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그들은 고고한 품위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번 음반을 통해, 메탈리카는 자신들을 메틀 마스터로 만들었던 그때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내뱉은 말들과 사라진 얼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물론 목소리도, 리프도, 좋은 곡도 돌아오지 않는다). 75분 짜리 음반 한 장이 그것을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일텐데,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말을 빌자면 오만이란 바지를 빼앗긴 뒤에도 손에 쥐고 있는 벨트와 같은 것이다. 이 음반은 바지를 되찾고자 벨트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퇴역 해병대원을 연상시킨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어둠으로 사라져도 기억은 남을지니, 굿바이 마스터. 20030608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4/10 * P.S : 지금 판매중인 [St. Anger]에는 보너스 DVD가 수록되어 있다. 음반 수록곡들의 리허설 장면을 모은 것인데, 몇몇 곡들은 스튜디오 작업물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수록곡 1. Frantic 2. St. Anger 3. Some Kind of Monster 4. Dirty Window 5. Invisible Kid 6. My World 7. Shoot Me Again 8. Sweet Amber 9. The Unnamed Feeling 10. Purify 11. All Within My Hands 관련 사이트 메탈리카 공식 홈페이지 http://www.metallic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