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chel’s – Music For Egon Schiele – Quaterstick/Pastel, 1996/2003 Review For Rachel’s 새로운 포장으로 라이센스 발매된 레이첼스의 [Music For Egon Schiele]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음악과 더불어 이 음반이 7년 전 것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공세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국내 발매사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바란다. 레이첼스와 이 음반에 관한 설명은 부클릿에 ― 문화계 인사들의 호평과 함께 ― 정성스레 적혀 있으니 여기서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신에 음반에 관한 생각 몇 가지를 적고 맺으려 한다. 이 음반에 담긴 음악들은 에곤 쉴레의 그림과는 별 관계가 없다. 굳이 연관짓자면 쉴레의 그림과 생애에 대한 반응일 것인데, 그것은 이미 다른 세계의 것이다. 음반 자체가 쉴레의 삶을 다룬 발레의 배경음악에서 시작된 것이었다는 사실까지 생각하게 되면 관련은 더욱 멀어진다. 그러니 음반의 건조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쉴레의 병약하고 에로틱한 야성이나 골체미(骨體美)에 대한 집착과 병치시킬 이유는 없다. 그의 그림과 생애에 이 음악을 대입시키려는 시도는 낭패감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쉴레와 음반에 감응한 당신의 삶을 얹어본다면 모를까. 더하여, 이 음반과 레이첼스의 다른 음반이 맺고 있는 연속성을 강조하려 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Selenography](1999)와 같은 레이첼스의 대표작은 언뜻 들어도 이 음반과는 다른 소리와 의도를 담고 있다. [Selenography]는 바로크 음악의 수평적 진행구조를 통해 록의 형식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었고(“Honeysuckle Suit”), 각종 노이즈와 샘플로 꾸민 음향의 방 속에서 울리는 멜로디들은 예쁘장한 배추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그러나 [Music For Egon Schiele]의 음률은 서양 음악의 전통에 순응하고 있다. 이를 즉물적이고 담백하게 이끎으로써, 음반은 첼로와 피아노 소리만 들으면 흰자위가 보이게 눈을 감아주시는 선남선녀들을 위한 칵테일 파티의 배경음악으로 타락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연주회 음악의 애호가들은 이 음반에서 초기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나 베베른(Anton Webern)의 탈낭만적 낭만성, 혹은 라벨(Maurice Ravel)이나 사티(Erik Satie)가 표현한 바 있는 엄격한 퇴폐의 흔적을 찾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음반에 담긴 음악의 작법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작곡 양식, 즉 전쟁에 대한 불안이 아닌, 새천년에 대한 들뜬 불안을 표현했던 양식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나 여기서 그 불안은 삭제되었으며, 동시에 이 작업 자체는 효과와 맥락을 중시하는 대중 음악의 영역에 놓여 있다. 이미 사망 선고를 받고 영화음악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음악 양식을 DIY 정신으로 무장한 인디 록커들이 로파이(lo-fi)한 음향 속에서 침울하게 되살려냈다는 것이 판단의 근거이다. 텍스트 ― 악보 ― 로 환원될 때 이 음반은 단순한 수준의 미니멀리즘 실내악으로 퇴보할 것이다. 이 음반은 오랫동안 듣고 즐길 수 있는 음악들을 담고 있다. 음악의 정서적 매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기꺼워할 수 있는 소리들이다. 음반의 소리들은 높은 집중을 요하지도,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하면서 들을 수 있는 것처럼 굴지도 않는다. 그것이 이 음반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까지나 야니(Yanni)나 유키 구라모토(Yuhki Kuramoto)가 흘리는 식염수 눈물을 마실 수만은 없지 않은가. 최근의 불황 속에서 이 음반은 청자의 선택과 기호를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다. 호화 부클릿을 가득 메운 말의 상찬도 그런 의미에서라면 눈감을 수 있다. 20030603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7/10 수록곡 1. Family Portrait 2. Egon & Gertie 3. First Self-Portrait Series 4. Mime Van Osen 5. Second Self-Portrait Series 6. Wally, Egon, & Models in the Studio 7. Promenade 8. Third Self-Portrait Series 9. Egon, Edith & Wally Meet 10. Egon & Wally Embrace & Say Farewell 11. Egon & Edith 12. Second Family Portrait 관련 사이트 쿼터스틱 레이블의 레이첼스 페이지 http://www.southern.com/southern/band/RACH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