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에 주의하라 | 《n+1》 지음 | 최세희 역, 마티, 2011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53452 틈 사이 꿀처럼 스며드는 머릿속이 복잡해진 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f(x)가 ‘나 어떡해요 언니’라고 말하면서 눈을 치켜뜨고 화면 속에서 애교 있는 웃음을 지었던 그때 말이다. f(x)는 모종의 코드를 건드렸다. 앰버 같은 캐릭터가 등장한 것도 의외였지만, 오 이런 맙소사, 대놓고 ‘언니’를 호명하다니. 전략은 유효했고 그 해 퀴어 퍼레이드에서는 “NU 예삐오”가 흘러나왔다. 만약 거기에서 그쳤다면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EP의 포토그래퍼 크레딧에는 하시시박의 이름이 선명했다. 얇게 저민 고기를 맨 가슴에 붙인 여자, 월경혈이 묻은 팬티 장례식, 혹은 평범한 거실의 화초 뒤로 발가벗고 선 몸 같은 걸 찍어대는, 대마초라는 뜻의 이름을 쓰는 그 포토그래퍼 하시시박? 그런가 하면 이번 앨범에서도 f(x)는 짜릿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칼날보다 차갑게 그 껍질 벗겨내 난 지금 Danger 한겹 두겹 페스츄리처럼 얇게요’라니 온 몸이 짜릿짜릿할 수밖에. 정말이지 뭔가 정통으로 간파당한 듯해서 쑥스러울 지경이다. 퀴어, 컬트 등의 하위문화적 요소가 뒤섞인 f(x)를 보면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내 표정은 갈수록 가관이다. 이걸 보고 순수하게 열광해야할지, 혹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선 안 되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치만 뭐, 사실 그렇게 복잡할 것도 없다. 뭐 어떠냔 말이다, ‘힙’한데! 그랬다. f(x)로 대변되는 SM의 기획을 좀 더 투명하게 이해하려면 ‘힙’하다는 게 뭔지 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는 게 바로 [힙스터에 주의하라]를 읽고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이다. [힙스터에 주의하라]는 2010년 뉴욕에서 발간된 문화비평서다. 새로운 ‘문학, 지성, 정치’ 저널을 표방하는 《n+1》이 ‘What was a hipster?’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획했다는 이 책은, 여러 사람의 증언들을 통해 ‘힙스터’를 분석한다. 정치하고 일관된 진술이라기보다, 좀 시끄럽고 산란한 느낌이긴 해도 힙스터의 면면을 조각조각 꺼내보는 집단지성을 보여준다. 2009년 봄 맨하탄에서 열린 토론회 내용이 가감 없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힙스터에 대한 다수의 흥미로운 에세이 등이 실려 있다. 책의 원제인 ‘What was a hipster?’가 과거형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힙스터에 주의하라]는, 1940년대부터 시작되어 2000년대 후반에 절정을 맞고 이제 좀 사그라들기 시작한 힙스터 현상의 미국적 맥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밥 재즈, 비트닉, 하얀 흑인, 히피, 그런지, 인디, 얼터너티브 등이 ‘힙스터’의 긴 변천사를 수놓았던 키워드라면, 잠깐의 소강기 이후 1999년부터 다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현대’ 힙스터는 네오 보헤미아와 인디록 문화를 특징으로 한다. 술집이나 클럽, 카페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대 힙스터는 디자인, 마케팅, 웹개발 등의 스킬을 바탕으로 후기 자본주의의 사회적 기반을 드넓고 탄탄하게 닦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띵똥! 그렇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지금 이 시간에도 홍대, 이태원, 가로수길, 삼청동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런 일들 말이다. (보통 쓸데없이 고학력자인) 사람들이 재능과 기술을 총동원해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쿨’하고 ‘힙’하게 기획하고, 고맙게도 답례로는 다음 달에 월세를 올리겠다고 말하는 건물주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 일련의 사이클은 한국에서 현재진행형이다. 번역서의 제목이 ‘힙스터에 주의하라’인 것은 아마 그런 맥락 때문일 것이다. “힙스터가 존재하는 곳은 우리의 토양, 우리 동네를 비롯한 아주 구체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힙스터는 친밀한 적이며, 동시에 위험요소이자 유혹”이다. 힙스터에 주의하라. 왜냐하면 힙스터는 자신이 알고 저지르는 일이든 아니든 간에, 소수 집단이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 올린 문화를 대박 상품으로 만들어서 단시간에 소비된 후 버려지게 하는 ‘쿨헌터’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앤디워홀은 힙스터의 아버지라고 할 만하다. 마돈나와 레이디가가 역시 같은 핏줄이며, 커트 코베인은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마지막 인물이다. 그렇지만 하위문화를 순수한 피착취자로 보는 이분법을 작동시키는 것 역시 곤란하다. 흑인, 퀴어, 인디, 페미니즘, 자발적 가난, 환경 운동 등이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팽창 전략을 구사하는 한, 그들은 힙스터와 공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힙스터는 ‘비행’의 가면 뒤에서 저항을 가장한다. 그러나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힙’하다는 이유만으로 트럭커햇(trucker hat, 야구 모자의 일종. 트럭운전사 및 농경업 종사자들에게 농경용품 회사에서 헐값에 판매한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패리스 힐튼 등이 쓰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이나 와이프비터(wife-beater, 마누라 패는 놈)라는 이름의 속옷을 걸칠 정도의 자타공인 얼간이들을 한국에서 직접 본 적은 없다. 오히려 힙스터가 위험한 건 그 정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힙스터는 드물고, 누구도 자신이 힙스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힙스터라는 실체 없는 존재를 쉽게 비난한다. 문제는 힙스터적인 태도가 어디에나 혼재하고 있다는 거다. 두리반이 힙하고,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새마을운동 모자가 힙하고, 슈퍼컬러슈퍼의 해외 인디록 공연이 힙하고, 픽시 자전거를 타고 환경을 생각하며 거리를 달리는 게 힙하다. 이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스타일’로서 드러내거나, 이해하거나,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게 바로 주의해야 할 핵심적인 힙스터스러움이다. 우리는 “편견에 사로잡혀 스키니 진을 입은 삐쩍 마른 녀석들을 욕하는 대신, 도시를 가꾸는 것도 도시를 망치는 것도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n+1》은 이 책을 기획하면서, 힙스터들이 만드는 힙스터 저널이라는 욕을 잔뜩 들어먹었다. ‘사회학적 연구’라는 부제를 붙이고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레퍼런스로 언급하면서도, 이 책이 학회지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라느니 하는 식으로 얼토당토않은 쿨함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피치포크 미디어나 비평가들 역시 본문 안에서 힙스터 소굴, 힙스터 화신 등으로 자주 언급된다. 그런 의미에서 [weiv]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힙스터의 급소는,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자의식이 강한 나머지 창조적인 문화를 사심 없이 좋아하고 모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떠올려야 하는 건, 어쩌면 수전 손택의 다음과 같은 언질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틈 사이 꿀처럼 스며드는 힙스터스러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처방전은 아닐까. | 글 이수연 wei.jouir@gmail.com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