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엔 에스빠뇰을 찾아서
‘Rock en Espanol’이란 말을 영어로 번역하면 ‘Rock in Spanish’ 정도쯤 되고, 한국어로 번역하면 ‘스페인어로 된 록 음악’ 정도쯤 될 것이다. 한국어로 된 록 음악도 있는 마당에 스페인어로 된 록 음악이 없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장르 이름이든 특정한 시공간을 전제한다는 점을 안다면 이 용어도 그저 보통명사는 아닐 것이다. 브릿팝(BritPop)이나 제이팝(J-pop)이 영국과 일본의 대중음악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공간의 특정한 감성’을 전제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Rock en Espanol’이라는 이름이 한반도 남단인 여기까지 들려온 것은 1990년대 후반이었다. 소문의 출처는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CMJ]나 [Spin] 같은 전문 음악잡지 뿐만 아니라 MTV나 [New York Times] 같은 주류 미디어에서도 록 엔 에스빠뇰에 대한 특집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이쯤 되면 ‘마케팅 용어’로 정착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이 용어조차 ‘너무 모호하고 느슨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앞으로는 더욱 세분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록 엔 에스빠뇰이 대표하는 ‘특정한 시공간의 특정한 감성’이란 무엇일까. 이를 위해서는 미국에서 라틴 음악이 어떻게 마케팅되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사족이지만 이런 말은 ‘나까지 알 정도면 이미 상업적 범주화가 완료된 상태다’라는 자조를 포함한다 -_-). 하지만 이런 골치 아픈 일은 나중으로 미루자. 지금은 그저 록 엔 에스빠뇰이라는 음악이란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들과 유럽의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록 음악’이라는 정도로만 정의하고 끝내두자는 이야기다. 이 가운데 꼴롬비아의 아떼르씨오뻴라도스(Aterciopelados)와 블로께스(Bloques), 멕시코의 카페 따꾸바(Cafe Tacuba)와 몰로또프(Molotov), 아르헨티나의 파불로소스 까디약스(Los Fabulosos Cadillacs)와 에나니또스 베르데스(Los Enanitos Verdes) 등은 자국은 물론 라틴권을 넘어 영미권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정보 차원에서 알아두자. 최근 [Laundry Services]와 여기 수록된 댄스 팝 넘버 “Whenever, Wherever”로 빌보드 앨범 차트 3위, 싱글 차트 6위까지 오른 꼴롬비아 출신의 샤끼라(Shakira)도 록 엔 에스빠뇰에서 빠뜨릴 수 없다. 비록 팝 성향이 강하고 몇몇 곡은 영어로 노래부르지만 창법이나 감성에서 그녀가 로커임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록과 에스빠뇰이라는 두 단어가 처음에는 낯설었던 것이 사실이다. ‘rock’이 어쨌든 영어 단어이자 영미 음악으로 출발했으며, ‘espanol’이 스페인어이자 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문화를 함축한다면 두 단어가 지금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결합되기까지는 순탄치 않은 역사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록 엔 에스빠뇰이란 ‘라틴화(化)된 록 음악’일까, 아니면 ‘앵글로화(化)된 라틴 음악’일까. 풀어서 말하자면 그건 영미의 록 음악이 라틴 문화와 잘 융합된 새로운 대중음악일까 아니면 그저 ‘영미 록 음악’에 환장한 일부 정신나간 스페인어권 애들이나 듣는 음악일까.

이런 질문에 추상적으로 답변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시기별 지역별로 다양할 것이다’라는 무의미한 정답도 있다. 일단 두 개의 음반을 들어보면서 현실에 보다 가까이 가 보자.

196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싸이키델릭 음악
지금 소개할 음반은 두 종의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하나는 [Love, Peace & Poetry: Latin American Psychedelic Music](Q.D.K./Normal, 1998)이라는 타이틀을, 다른 하나는 [Reconquista!: Latin Rock Invasion](Rhino, 1997)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 주 1) 앞의 음반을 발매한 레이블은 금시초문이며, 부클릿을 읽어보아도 독일에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다. 음반 데이터베이스 사이트나 온라인 CD 숍을 뒤져보면 이 레이블이 [Love, Peace & Poetry]라는 타이틀로 세계 각지에 존재했던 싸이키델릭 음악의 잊혀진 작품들을 재발매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Reconquista!: Latin Rock Invasion]은 ‘저명한 재발매 전문 레이블’인 라이노(Rhino)에서 발매되었다. * 주 2) 라이노 레이블의 관심이 미국 대중음악의 잊혀진 고전들에 머물지 않고 영토를 확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020316022955-0406series01-trafficsound1페루의 거라지-싸이키델릭 밴드 트래픽 사운드의 ‘그시절’의 연주 장면
짐작할 수 있듯 [Love, Peace & Poetry: Latin American Psychedelic Music]에는 1960년대 말 – 1970년대 초 라틴 아메리카에서 활동했던 거라지 밴드 혹은 싸이키델릭 밴드들의 레코딩이 수록되어 있다. 반면 [Reconquista!: Latin Rock Invasion]에는 1980년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와 라틴 유럽(스페인/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상대적으로 신예 밴드들의 레코딩이 수록되어 있다(상세한 설명은 별도의 앨범 리뷰를 참고하라). 처음 들을 때의 인상을 말하라면, [Love, Peace & Poetry: Latin American Psychedelic Music]은 ‘비틀스(The Beatles)와 도어스(The Doors)가 여러 사람 폐인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을, [Reconquista!: Latin Rock Invasion]은 ‘클래쉬(The Clash), 매드니스(The Madness),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가 여러 명 고생시켰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즉, 앞의 앨범은 록 음악의 황금시대라는 1960년대의 고색창연한 몽롱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고, 뒤의 앨범은 대체로 ‘스카 펑크’라고 부를 만한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Traffic Sound – Virgin
Laghonia – Someday
Laghonia – Everybody On Monday

20여 년의 격차가 있는 만큼 두 음반에 수록된 음반의 내용물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각 시기에 영미권의 트렌드를 ‘다소의 시차를 가지고’ 수용했음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말이 좋아 수용이지 추종에 지나지 않은 것 아닐까. 추종이든 아니든 이런 ‘록 폐인들의 역사’가 20세기 제 3세계 문화사의 일부를 이루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처음 들을 때는 스페인어 가사가 어설프고 낯설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1970년대 캠퍼스 그룹 사운드’의 느낌과 비슷하게 다가올 때도 있다. 내가 한국어를 전혀 못한다는 환상을 가지면 동류감이 더욱 강해진다. 그래,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진지한 음악 팬들은 세계에 세 나라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살아온 것 같다. 미국, 영국 그리고 자국(한국 표현으로 ‘우리나라’).

두 음반 중 [Reconquista!: Latin Rock Invasion]에 한두 트랙을 수록한 밴드들은 지금도 활동하는 밴드들이 많으므로 이들의 음악과 삶에 대한 소개는 뒤로 미루자. 그렇다면 1960년대 말을 풍미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로커들, 아니 ‘로께로스(rockeros)’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이들에 관한 자료들도 있었다. 그것도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로. [Love, Peace & Poetry: Latin American Psychedelic Music]의 각 트랙의 주인공들의 국적을 훑어보면 페루가 네 밴드에 여섯 트랙, 칠레가 세 밴드에 세 트랙, 아르헨티나가 두 밴드에 세 트랙을 각각 수록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멕시코와 브라질이 두 밴드에 두 트랙, 베네수엘라가 한 밴드에 한 트랙이다. 멕시코와 브라질처럼 나름대로 음악 강국인 나라들보다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의외라면 의외다.

20020316022845-0406series02-losvidrios로스 비드리오스 께브라도스(Los Vidrios Quebrados)의 앨범 [Fiction] 표지
그렇지만 자료를 읽어보면 페루와 칠레의 경우 이들 선구자들은 장수하지도 못했고, 후대의 록 밴드들과 끈을 잇지 못했다. 1960년대 후반의 짧은 영광된 시기를 보낸 뒤 1970년대 초 이들 멤버들은 음악 경력을 포기했다. 칠레의 맥스(Los Macs)는 프랑스로, 비드리오스 께브라도스(Los Vidrios Quebrados)는 이탈리아로 가서 국제 진출을 모색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 뒤 페루는 경제적 곤경을, 그리고 칠레는 정치적 억압을 맞이하여 1960년대에 싹을 틔운 록 문화를 꽃피우지 못했다.

Los Vidrios Quebrados – Oscar
Los Vidrios Quebrados – Oscar Wilde
Los Macs – Degrees

그렇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칠레와 페루의 싸이키델릭 밴드들의 노래 가사는 영어다. 영어를 아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음악을 듣고 국적을 알아 맞추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들의 국적은 스페인어권 나라들이었지만 이들의 음악은 ‘록 엔 에스빠뇰’은 아닌 셈이다. 반대로 트래픽 사운드(Traffic Sound)처럼 스페인어로 노래부르는 경우에는 밴드의 이름이 영어다(앨범에는 영어 가사로 된 곡도 한 곡 있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밴드가 해산된 이유가 ‘유학, 진학 등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든가 ‘음악이 아닌 다른 경력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을 보면, 라틴 아메리카에서 록의 선구자들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나라에서 소수의 선택된 계층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래픽 사운드(Traffic Sound)의 전신인 행 텐스(Hang Ten’s)의 바이오그래피에는 “그들은 오늘날 과학과 예술 분야에서 성공적 프로페셔널이다.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요즘도 가끔 잼 연주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이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설명해준다.

최근 이들과 가진 인터뷰를 읽다 보면 ‘자국’의 대중음악계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자신들의 모순된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볼 수 있다. ‘깨어진 안경’이라는 뜻의 비드리오스 께브라도스(칠레)의 멤버 후안 마떼오 오브라이언(Juan Mateo O’brien)은 왜 그렇게 이름을 지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상하게도 우리는 영어로 노래하고 스페인어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점에 대해 “훌륭한 발명, 행복한 발명”이라고 말했지만, 이들의 역사는 그리 훌륭하지도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 저 표현이 혹시 자조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나라의 경우는? 브라질과 멕시코의 경우도 만만치 않은 사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멕시코의 경우 1970년대 초 우드스톡 스타일의 페스티벌인 ‘페스티발 데 아반다로(Festival de Avandaro’가 충격을 준 결과 록 음악을 뜨악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 기나긴 암흑시대를 보냈다고 한다. 브라질의 경우 1960년대 중후반 뜨로삐까이아(Tropicalia)라는 이름으로 영미 대중문화와 브라질의 전통문화를 융합한 독특한 문화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주역들은 성공적인 음악 경력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뜨로삐까이아는 ‘브라질 록’으로 계승되었다기보다는 MPB(Musica Popular Brasileira-브라질 대중음악)라는 광의의 범주로 흡수된 느낌이 강하다. 즉, ‘멕시칸 록’과 ‘브라질리언 록’은 1960년대의 사건과는 간접적 관계만을 가지고 있다. * 주 3)

Los Dug Dug’s – Lost In My World (Perdido En Mi Mundo)
Los Dug Dug’s – World Of Love (Mundo de Amor)
Kaleidoscope – Colours

이런 저런 이유로 이제까지 언급한 나라들에서 ‘록의 역사’는 1970년대를 거치면서 커다란 단절을 겪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남은 나라는? 아르헨티나다. 위 앨범에서 스페인어로 밴드 이름을 짓고 스페인어 가사로 노래부른 유일한 케이스가 아르헨티나라는 사실은 그저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앨범에 이름을 올린 두 밴드 알멘드라(Almendra)와 가또스(Los Gatos)는 해체되었지만, 두 밴드의 리더였던 루이스 알베르또 스삐네따(Luis Alberto Spinetta)와 리또 네비아(Litto Nebia)는 지금도 음반을 발표할 정도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왔다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일단 무턱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찾아가 보자. 불행히도 요즘 이곳의 사정이 말이 아니지만.

Los Gatos – La Balsa
Los Gatos – Madre Escuchame
Almendra – Muchacha (Ojos de Papel)
Almendra – Color Humano
Almendra – Tema De Pototo
Almendra – Obertura
Manal – Jugo De Tomate
Manal – Avellaneda Blues

부에노스 아이레스, (Are You) Happy Together?
어떤 장소에 대한 기억이 미디어에 의존하는 정도는 나날이 심해진다. 그래서 한번도 가보지 못한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곳은 두 가지 영상으로 다가온다. 하나는 마돈나가 주연을 맡은 앨런 파커(Alan Parker) 감독의 영화 [Evita](원작은 앤드류 로이브 웨버의 뮤지컬), 다른 하나는 왕자웨이(한국말로 ‘왕가위’) 감독의 영화 [Happy Together]다. 두 작품의 주제나 성격은 판이하지만, 여기서 묘사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모습은 로맨틱하고 이국적이다. 지리 지식을 동원하여 한국의 대척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와 정반대의 계절을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그렇다.

그런데 요즘 TV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영상은 이런 이국적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세밑 저녁 뉴스 시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굶주린 군중들이 상점을 약탈하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등장했다. 화면만 봐서는 규모나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는 알 수 없지만, 급박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우리 교민의 피해’를 우려하던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이어 현지 교민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 글쎄 도둑놈들이 우리 가게 앞까지 와 가지고는….”이라면서 혀를 차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다. 목소리의 톤을 글로 묘사할 수 없어서 유감이다.

현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시위하는 군중의 모습이 나온 것은 그 다음이다. ‘도둑놈들’에 대한 보도가 시위에 대한 보도보다 더 중요할까. 그건 일종의 ‘보도지침’이었을까. 어쨌든 그 뒤로 도둑놈들은 TV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연일 거리를 메우는 성난 군중의 모습, 은행과 상점 앞에 줄을 서있는 시민의 모습, 2주 동안 다섯 명의 대통령이 낙마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심층 보도 프로그램에서는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하지 못해 허덕이는 빈곤층과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는 부유층의 모습이 대조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낭만적 감정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별 해당사항 없는 것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이나 왕자웨이의 영화도 어떤 필요에 의해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이용했던 것 아닌가.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산업이든 홍콩의 영화 산업이든 여기 투영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이미지는 문화 산업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득 떠오르는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서정적 멜로디도 지금처럼 험악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인들에게는 낯설기 그지없을 것이다.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파란만장한 삶을 산 후안 페론 대통령의 부인인 에바 페론(1921-52)의 심정을 담은 감상적인 곡이다. 특히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진실은 내가 당신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는 것 / 내 모든 거친 나날 동안, 모든 나의 광기의 실존 동안 / 나는 나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 나와 당신사이에 거리를 두지 마세요”라는 후렴구의 가사는 청자의 심금을 울리는 대목으로 적격이다. 그런데 지금 광장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시위하는 군중 앞에서 이 노래를 들려주면 “누구 놀리냐”라는 거센 항의를 들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Evita]가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아르헨티나 청년들은 뜨악한 반응을 보였다.

20020316022647-0406series03-charly찰리 가르씨아의 최근 모습. 헉, 매릴린 맨슨이…
그러면 사운드트랙을 바꿔 보자. “Don’t Cry For Me, Argentina” 같은 감상적 만가(輓歌) 대신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cia)가 1982년에 만든 “No Llores por Mi, Argentina”라는 곡을 들어보자. 스페인어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도 두 곡의 제목이 똑같은 뜻임을 알 것이다. 이를테면 동명이곡(同名異曲)인 셈이다. 가사도 멜로디로 모두 다르다. “상처를 입었다고 울지 마라 / 그치지 않고 피 흘리는 상처 때문에 /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라 / 매일 매일 너를 더욱 사랑한다.” 업템포의 리듬과 시니컬한 가사를 가진 이 곡의 마지막 구절은 반어적으로 진솔하다.

Seru Giran – No Llores por Mi, Argentina(live)
Seru Giran – No Llores por Mi, Argentina(live)

나의 기억으로 1982년이면 아르헨티나는 군부독재 정권이 지배하던 때이다. 포클랜드 전쟁(말비나스 전쟁)에서 영국에 박살이 난 직후이기도 하다. 그 때 나온 이 곡의 주인공 찰리 가르시아란 인물은 누구일까. 물론 이 이름도 그의 본명은 아니다. 스페인어로 ‘찰리’라는 표기는 낯선 것이다. 맞다. 그의 본명은 까를로스 알베르또 가르시아다. ‘패티 김’이나 ‘스티브 유’ 같은 작명인가. 오늘은 하나의 에피소드만 소개하면서 마치자.

1980년대 중반 오노 요꼬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찾았을 때 그녀를 찾아와 말을 건네려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남자는 두 가지 색으로 콧수염을 기른 히피 같은 모습이었다. 몇 마디 말을 나눈 뒤 그가 돌아가자 오노 요꼬는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고, 주위에 있던 사람은 “그는 존 레논입니다. 지금 현 시점에서 유일하게 그 사람만이 아르헨티나인입니다(He is John Lennon, only he is an Argentine now)”라고 대답했다. ‘아르헨티나의 존 레논’도 아니고 ‘존 레논 그 자체’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튼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대략 상상할 수 있다. 존 레논이라는 단어가 ‘팝 스타이면서 정신적 지도자’라는 의미라면 말이다. 그의 이름은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cia)였고, 짐작할 수 있듯 아르헨티나 록의 선구자다. 록 스타가 ‘유일하게 아르헨티나인’인 상황은 이 나라에서 록 음악이 존중받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0020315 | 신현준 homey@orgio.net

주 1) 라이노는 1978년 USC(한국어로 ‘남가주대학’) 대학생이던 해롤드 브론슨(Harold Bronson)과 리차드 푸스(Richard Foos)가 ‘창업’한 재발매 전문 레이블이다. 재발매라고는 하지만 비틀스의 [1]이나 아바의 [그레이티스트 히츠] 같이 속보이는 경우와는 다르다. 대표적인 것들은 1970년대 히트곡 모음인 [Have A Nice Day](25종), 1970년대 소울 모음집 [Did It Blow Your Mind?](20종), 뉴 웨이브 히트곡 모음집인 [Just Can’t Get Enough](15종), 펑크 록 모음집인 [D.I.Y.](15종), 1960년대 거라지 밴드들의 레코딩을 모은 [Nuggets] 등이다. 그 외에도 오래된 장르와 스타일을 발굴하여 특정 타이틀로 달고 시리즈물로 제작하고 있다. 방금 언급한 것들은 ‘대박’까지는 아니라도 꽤 쏠쏠하게 팔려나갔다. 물론 여기에는 1992년 워너 브라더스 산하의 어틀랜틱(Atlantic) 레이블과 배급계약을 맺은 사실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들의 수집벽(癖)은 “현명하게 강박적(smartly obssesive)”이라는 평을 듣는다.[back]

주 2) 레꽁끼스따(Reconquista)는 스페인어에서는 고유명사다. 해석하면 재정복! 스페인이 아랍계 무어인들에게 완전히 정복된 이후 1492년 국토를 다시 회복할 때까지 800년에 걸친 전쟁이 바로 레꽁끼스따였다. 그러니까 그 의미는 ‘우리 땅을 지배하던 외세를 완전히 물리치고 땅을 다시 찾은 것’ 쯤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음반에 레꽁끼스따라는 제목을 사용한 것은 중남미 대륙에 미친 미국 음악의 영향을 쫓아내고 다시 자기들의 음악으로 회복한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back]

주 3) 논리적 근거는 별로 없지만 록 음악은 온대 지역의 나라에서 꽃피우는 것 같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열대 지방에 전파된 록 음악은 그곳에 미리 존재하던 음악과 섞여서 ‘제 3의 무엇’이 되는 반면, 온대 지방에 가면 ‘국민적 록(national rock)’이 된다. 지난 번에 보았듯 꾸바의 쏭고(songo)나 브라질의 뜨로삐까이즈무(tropicalismo)에도 ‘비틀스와 밥 딜런의 영향’을 느낄 수 있지만, 이들이 음악을 ‘꾸바 록’이나 ‘브라질 록’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즉, 로스 반 반(Los Van Van)이나 까에따누 벨로주(Caetano Veloso)를 ‘록 뮤지션’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물론 온대 지역이라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다. 경제적으로 웬만큼 먹고 살만 해야 하고, 문화적으로도 미국 대중문화에 개방되어 있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을 충족한다고 해도 대개의 경우는 ‘소수의 서양물 먹은 애들이나 즐기는 호사스러운 음악’이 된다. 그런데 간혹은 ‘국민적 예술양식’이나 ‘반체제적인 저항음악’으로 존중받는 경우도 있다. 꽃 피운 정도가 아니라 외부인이 보기에는 경직되다 싶을 정도로 ‘존중’을 받았다는 뜻이다. 상황과 조건은 많이 다르지만 지난 번 소개했던 (구)소련 및 동유럽권이 그랬고, 오늘 소개한 아르헨티나도 이 점에서는 비슷하다. [back]

관련 글
Various Artists, [Love, Peace And Poetry: Latin American Psychedelic Music] – vol.4/no.6 [20020316]
Los Shakers, [Por Favor] 리뷰 – vol.4/no.6 [20020316]
Laghonia, [Etcetera] 리뷰 – vol.4/no.6 [20020316]
Los Dug Dug’s, [Los Dug Dug’s] 리뷰 – vol.4/no.6 [20020316]
Los Gatos, [Los Gatos] 리뷰 – vol.4/no.6 [20020316]
Manal, [Manal] 리뷰 – vol.4/no.6 [20020316]
Almendra, [Almendra] 리뷰 – vol.4/no.6 [20020316]

관련 사이트
Los Vidrios Quebrados 와 Los Macs와의 인터뷰
http://60spunk.m78.com/chileanbands.htm
페루의 록 음악(잉카 록) 사이트
http://www.incarock.com
http://www.rockeros.com/peru.htm
아르헨티나 록 데이터베이스
http://rock.com.ar
http://www.geocities.com/rock-argentino/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록 음악 데이터베이스
http://tinpan.fortunecity.com/waterloo/728/magic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