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식품 맥스웰 광고, 유호정 (1992)

 

“바보… 내 마음을 감추기 위해 커피를 마셨습니다.” 1992년 당시 하이틴스타 유호정의 커피 광고 속 내레이션이다. 허나 우리는 감수성 돋는 내레이션에 쉬이 빠지기 전, 광고에 깔린 노래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 만남에서 헤어짐은 그리 멀지 않더니 헤어짐 후 만남까진 왜 이다지 먼 건지.” 그 당시 청년들에게 이 후렴구 가사는 ‘시대를 수놓은 한국의 광고카피 50선’류 책이란 게 있다면, 빠질 수 없는 카피와도 같았다. 노래에 삽입된 공항 내 안내방송과 비행기 소리는 이 노래가 4분 30초 동안 읽어야 할 최루성 단편소설임을 감각적으로 선보인 티저(teaser)였다. “HAM”은 ‘나, 곧 미국으로 유학 가’란 이별의 말이 [마녀사냥]류 방송의 희화화된 사연이 아니라, 여기까지가 너와 나의 인연인가 보다라는 것을 정말 믿었던 시대의 청년들에게 소품과도 같은 노래였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광고홍보학과가 새로운 인기학과로 떠오르고 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고, 읽는 책이 아닌 ‘보는 책’이란 평가를 받았던 원태연의 시집 『넌 가끔 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가다 딴생각을 해』가 베스트셀러이던 시절. 김승기는 시대적 감각을 읽을 줄 아는 싱어송라이터였다. 그의 노래는 귀로 듣는 음악이면서도 귀로 ‘보는’ 음악이었다. 한 곡 한 곡엔 분명한 플롯이 있었다. 노래 속 서사를 돕는 사운드 삽입은 듣는 이의 시각화를 도왔다(2집 [비엔나에서 커피 어때?]에 수록된 “캅”에서는 처연함이 담긴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3집  [U & I]에 수록된 “컴퓨터 사랑”에서는 PC통신으로 썸을 타던 설렘을 연상시키는 키보드 소리를 넣기도 했다).

“HAM”은 보는 노래로서의 감각이 집약된 곡이다. 1절이 끝난 뒤 간주 부분부터 삽입된 모스 부호(Morse Code) 샘플이 그 증거일 것이다. 이 모스 부호가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건 김승기가 주는 소소한 선물이다. | 김신식 https://www.facebook.com/shinsik.kim

 


김승기 – HAM | 1집 샤넬 N.25 (1992) | 정보: http://www.maniadb.com/album/127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