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J. 레비틴 [호모 무지쿠스: 문명의 사운드트랙을 찾아서] 장호연 역, 마티, 2009 최근 몇 년간 교양과학서 시장의 인기 아이템은 뇌과학과 진화론이었다. 이 두 분야가 인간사의 구석구석까지 얼마나 탄력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서점에 깔려 있는 수많은 관련 서적들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뇌와 음악, 진화와 음악에 대한 책이 하나쯤 나온다 해서 이상할 건 없다. 문제는 그런 과업을 수행할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일 게다. 뇌에 대해서도, 진화에 대해서도, 음악에 대해서도 잘 알고, 글도 잘 쓰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없지는 않다. 이 책의 저자인 대니얼 J. 레비틴은 음악 프로듀서에서 인지심리학과 신경과학 연구로 전문 분야를 바꾼 사람이다. 뇌와 음악 사이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다시 말해 음악을 듣는 동안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한 그의 첫 번째 책 [뇌의 왈츠]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는 이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은 그의 두 번째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에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명시적으로 밝혀놓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이 [뇌의 왈츠]의 속편격이라는 것이다. 혹은 달리 말하자면, [뇌의 왈츠]가 ‘이론편’이라면 [호모 무지쿠스]는 ‘실전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뇌의 왈츠]는 음악을 듣는 동안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고, [호모 무지쿠스]는 그런 음악적 뇌가 어떤 진화적 이유에서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쓰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전자가 설명이라면 후자는 주장이다. 그 둘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인물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지과학자 중 한 명인 스티븐 핑커다. [뇌의 왈츠] 마지막 장에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듯이, 그를 비롯한 몇몇 인지과학자들은 음악을 언어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진화적 부산물로, 이른바 ‘스팬드럴(spandrel)’로 본다. ‘음악은 청각적 치즈케이크’라는 핑커의 유명한 주장은 그런 생각을 전제로 한 것이다. 레비틴은 그에 반발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음악은 그저 기분전환용 소일거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서 언어 같은 더 복잡한 행동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았고, 대규모 협력 작업을 용이하게 했으며, 중요한 정보를 후세에 전달하도록 도왔다.”(10) 그가 보기에 음악은 언어보다 먼저 나온 것이다. 더불어 그는 음악을 여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우애의 노래, 기쁨의 노래, 위로의 노래, 지식의 노래, 종교의 노래, 사랑의 노래다. 각각의 노래가 어떤 특성을 가지며, 어떻게 인간의 진화와 관련되어 있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김모 화백의 유명한 대사를 빌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앞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중에서 그가 ‘음악의 기원’으로 치는 것은 바로 지식의 노래다(“나는 지식을 전달할 필요성이 최초의 노래를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158)). 음악은 ‘잉여적’ 아름다움이기 이전에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런 주장은 어쩌면 어떤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한 글을 내 개인 블로그에 썼을 때, 어떤 이는 답글을 통해 이런 식의 주장이 지나친 환원론이며 그것이 ‘음악 자체의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나는 그러한 우려가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음악을 더 이상 생존의 도구로 보기는 어려우며, 이른바 ‘예술’은 그것이 원래 갖고 있던 실용적 목적에서 벗어나면서부터 독자적인 미적 가치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음악이 그러하다는 것과 그것이 어떻게 시작했는가를 따지는 것은 다른 범주의 문제일 것이다. 오히려 그 사이에 벌어진, 생존의 도구에서 독자적인 미적 가치를 가진 예술로의 신비로운 도약에 더 깊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자잘한 것 몇 가지를 짚으면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 번역은 무리 없이 잘 읽힌다. 역자의 경력을 고려해 본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책도 수두룩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당연하다는 말로 무심하게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곡들의 영문 표기를 해당 페이지에 달아놓지 않고 책 뒤쪽으로 한꺼번에 몰아넣은 것은 다소 아쉽다. 역자에게 저간의 사정을 듣기는 했지만 ‘일반 독자’를 감안했다손 치더라도 그냥 한글과 영문 제목을 병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무래도 이런 책에 흥미를 가질 이들에게는 “당신의 지금 그 모습 그대로”보다는 “Just The Way You Are”가 더 친숙한 표기일 테니까. 끝으로, 이 책의 원제는 ‘The World In Six Songs: How The Musical Brain Created Human Nature’다. [뇌의 왈츠]는 ‘This Is Your Brain On Music’이고. ‘음악 관련 서적’임을 티내지 않으려는 고민이 역력해 보였던 [뇌의 왈츠]와는 달린 [호모 무지쿠스]는 보다 음악 서적다운 제목을 달고 있다. 원래 제목보다 더 낫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역시 음악책은 ‘음악적’으로 제목을 다는 게 제일 좋다. 20100303 | 최민우 daftsounds@gmail.com